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으며 어떤 역사를 거쳐 왔는지 알고 싶지만, 역사라 하면 외울 것이 많아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역사공부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전체적인 흐름으로 이해하면서 천천히 알아간다면 보다 이해하기 쉬운 역사공부가 될 것이다. 그럼 먼저 한반도에 살기 시작했던 인류를 시작으로 구석기시대부터 고조선 시대까지 역사를 천천히 정리해 보자.
구석기 시대의 인류
약 70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는 농사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에 채집과 수렵으로 열매를 따먹거나 동물을 사냥하며 생존했으며, 생존 지역에 식량이 다 떨어지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정착과 유목생활을 반복했다. 정교하게 도구를 다듬는 기술이 없었기에 주먹도끼 같은 뗀석기를 사용했으며 반복적인 유목생활로 정착에 개념이 없어 동굴이나 바위 그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다.
신석기 시대의 인류
8000년 전 무렵에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신석기시대가 시작되었다. 농사를 시작하고 땅에서 먹을 것이 계속 생기게 되자 이들은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정착할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때 ‘움집’(마른풀로 집을 짓고 짐승의 가죽을 바닥에 깔아서 만든 집)이 탄생한다. 움집은 원형 모양으로 가운데 화덕이 있어 불을 피울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농사를 짓게 되고 나서 곡식을 조리하거나 저장할 때 필요한 빗살무늬토기와 이른민무늬토기를 만들었으며,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갈아서 정교하게 만들어 간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원시 수공업이 발달하게 된다.
청동기 시대의 인류
기원전 2000년 무렵 주석과 구리를 섞어 만든 합금인 청동을 발명하며 청동기시대가 시작된다. 신석기시대의 농사는 기술의 부족으로 조, 피, 수수 등 밭농사만 가능했으나 청동기 시대 때는 청동의 등장으로 벼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벼농사가 시작되고 곡식은 많은 사람들이 먹고도 남아도는 상황이 되자 이들 사이에서는 남은 곡식들을 서로 차지하길 원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사유재산과 빈부격차가 생기게 되었다. 부지런하고 기술이 좋으면 많은 양의 곡식을 가질 수 있었고 게으른 사람은 적게 가질 수 있었기에 결국 이들에게도 계급이 생기게 되며 계급사회가 시작되었다. 청동으로 만든 도구는 나무나 돌로 만든 도구보다 훨씬 섬세하고 고급스러웠으며 지배층 중심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철기의 등장과 고조선의 건국
기원전 400년 경에는 중국으로부터 철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며 철제 농기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청동은 무기나 생활도구로는 적당했지만 농사를 짓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철제 농기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농사를 더 많이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철제 농기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빈부격차는 더욱 촉진되어 계급사회가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어느 날 청동기로 무장한 이민족(언어, 풍습 따위가 다른 민족)이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고 한반도에 있는 부족들을 차례로 복속시킨다. 이들은 통합하는 과정에서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은 밀어내고 곰을 숭배하는 부족과는 힘을 합쳐 청동기를 기반으로 한 조선을 세우게 된다. 이때 나라를 건국한 사람은 단군왕검(단군왕검에서 ‘단군’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직책의 이름이다)이며 제정일치의 사회가 된다. 한반도에 국가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고조선은 8 조법(8개의 조항으로 된 고조선 시대의 법)이라는 성문법을 제정했으며, 현재는 8조법 중 3가지 조문만이 내려오고 있다.
1조: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인다.(생명존중의 사회를 알 수 있다)
2조: 사람을 다치게 한 자는 곡식으로 배상한다.(농경사회임을 알 수 있다)
3조: 남의 물건을 도둑질 한 자는 노비로 삼거나 50 만전을 배상한다.(‘노비’라는 단어로 계급사회임을 알 수 있으며 ‘50 만전’으로 화폐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계급사회로 농업 중심 국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고조선은 시간이 지나 발전하여 강대국이 된다.
위만 조선의 성립과 패배
기전원 2세기 무렵 중국에서 망명한 ‘위만’이라는 인물은 고조선의 준왕(시간이 흘러 단군이라는 직책이 없어지고 왕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되었다)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위만은 준왕을 몰아냈지만 기존 관리들을 그대로 수용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유지하였는데 이런 행동을 미루어 봤을 때 준왕은 고조선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위만이 권력을 장악한 후 고조선을 ‘위만 조선’이라 칭했으며 중국으로부터 적극적인 철기문화 수용으로 고조선은 많은 발전을 하게 되고 한나라와 진나라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국력이 강한 한나라의 침략으로 왕검성(고조선의 도성)이 함락되어 패배하게 되며, 이 땅에는 한사군(한나라가 고조선을 무너뜨린 뒤 설치한 행정 구역)이 설치되면서 고조선은 없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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